갈천서원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갈천서원(葛川書院)


오래전 사림(士林)이 고성군 동북쪽에 있는 금봉산하의 웅곡(熊谷)에 금봉서원을 세우고 행촌 이암선생과 관포 어득강선생을 봉향해 오다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의 병화로 원우(院宇)와 문적이 모두 소설되고 당시의 상량문만 오늘까지 남아 있다.

1712년(숙종 3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암, 어득강, 노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갈천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54년에 도촌(桃村) 이교의 위패를 모셔와 선현을 서차(序次)에 따라 왼쪽에서 이암, 이교, 노필, 어득강 순으로 병향(幷享) 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 네 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향사하는 서원으로서 높은 지대 위에 정면삼간으로 맛배지붕인 사현사(四賢祠)에 네 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하였고 신문삼간(神門三間, 內三門)이 규격에 맞게 배열 되어있고 내삼문(內三門)에는 강당인 낙영재(樂英齋)가 있어 정면삼간, 측면삼간의 삼량구조(三樑構造) 팔작지붕 목조 와가(瓦家)인 강당의 중간 1칸은 대청으로 하고 좌우에 방을 두고 좌측 방 앞에 누각과 같은 마루가 있다.
정문인 불사문(不舍門)은 정면 5칸, 측면 1칸 맛배지붕으로 가운데 1칸은 소슬대문인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양쪽 4칸은 방 2칸, 창고 2칸으로 구성 되어 있으나 건축년도가 오래되어 붕괴의 염려가 적지 않아 유지관리에 고심하고 있던 중 1994년 4월6일에 이평열(李平烈) 종친의 노력과 이한동(李漢東) 총리의 적극적인 협조와 심력으로서 1억 2천만원의 큰 정부보조금과 뜻있는 향유(鄕儒)와 고성이씨 종친들의 협찬을 받아 현위치의 서원 경내에 전형적이고 전통서린 고전식 목조건물 3칸으로 신규 닉영재(樂英齋) 1동을 건립하고 사우(祠字) 및 불사문(不舍門)을 대폭 중수하여 새로운 면모를 갖추었으며 제관의 숙소는 물론 사림(士林)의 재소(齋所)로서 원활을 기하고 있다.

향사는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과 9월 중정일(中丁日)에 1년 2회 사림 봉사로 행하고 있으며 지난 날에 제례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은 고성종중과 청도의 고성이씨 종중에서 부담하여 왔었다.
200여년 전 이곳 갈천서원 부근에 누대로 터를 잡고 사시던 조선생 내외분은 천성이 온후 정숙하고 부덕(婦德)이 출중하셨고 넉넉한 집안이었으나 이어줄 후사가 없었다. 그러나 행복한 생활을 누리셨으며 부군(조선생)이 먼저 가시고 부인께서 혼자 오랫동안 살게 되었다. 부인 백씨는 항상 서원에 봉안되신 선생을 흠모하시었고 또한 해마다 향사시에 빈약한 제수를 보시고는 전 재산을 서원에 기증하게 되었다. 천운이 다해 부인 백씨가 세상을 뜨시자 유림들의 결의에 의해 묘비를 세워 추모의 정을 베풀고 해마다 서원의 향사시에 제수를 차려 묘전에 시제를 세세년년 받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