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종친회 소개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대구종친회 창립 50주년 약사(略史)


大邱宗親會가 창립된지도 어언 56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도리켜 보건데 우리 固城李氏는 시조이신 휘 璜(황, 左右衛 猛校尉, 고려 9대왕 덕종 때) 이후 역대로 정치상으로나 문장(文章) 도덕면(道德面)에 있어서 명성과 덕망이 높아서 서거정(徐居正)선생이 “固城李氏는 高麗巨族이다.”(용헌공 휘 原, 좌의정 신도비문)라고 기록하기도 하였다. 2世 휘, 田枝(詹事公), 3世 諱 國軒(諡景安公), 4世 諱 永年(上護軍, 兵部尙書)를 거쳐 5世 諱 麟冲(奉翊大夫, 兵部尙書), 諱 嚴冲(檢校門下左侍中)때부터 세세(世世)에 명성 높은 명문거족으로 고려말과 조선초에 걸쳐 장관급 이상의 관직에 계신 분이 여덟 분이나 나왔고, 돌아가신 뒤 “文”字 시호(諡號)를 받으신 분 만도 여섯 분(文僖公, 文憲公, 文貞公, 文烈公, 文敬公, 文光公)이나 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이후 불운한 시대를 맞아 전국각지로 이산하는 비운과 이어서 국권의 상실기를 맞게 되니 독립운동에 가담(임시정부 國務領, 상용선생 등)하는 등 살아남기 위하여 국내외 각처로 흩어져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천운의 도움으로 조국이 광복되니 남북의 분단 속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자녀교육과 생활의 터전을 찾아 많은 오족이 이곳 대구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속에서 우리 대구종친회는 이미 해방전부터 고성이씨 대구화수회(大邱花樹會)가 고인이 된 기수(基守, 참판공파, 鍾律 회원의 엄친), 수기(守基, 鍾宙 고문의 선친) 종친이 중심이 되어 20~30명 규모의 화수회로 10年동안 유지되다가“ 기수 종친의 仙化(사망), 현(玹) 종친의 출사(出仕), 鍾國 종친의 서울행, 守基 종친의 귀향”으로 유야무야가 된 것이다. 그 뒤에도 참판공 마사리파 대구화수회가 조직되기도 했었다. 경인년(1950年) 여름이 되어 고성이씨 대구화수회 재건이 논의되어 “光基, 守基, 庠基, 鍾湖”등 족친이 모여서 23명의 찬동으로 대구고성이씨화수회 발기인회가 구성되어 회창립을 준비하던 중 불행하게도 6.25동란을 맞았던 것이다. 그 후 7년이 지난 1957년초 다시 “光基, 守基, 鍾春, 鍾文, 祜基, 庠基, 鍾湖, 鍾聲, 列基, 承漢” 종친 등이 발기인이 되어 화수회 재건을 위한 협의가 있었다. 이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해 5월27일에 발기인회를 가지게 되었고 동년 6월16일 창립총회를 대구교육대학 강당에서 갖고 “鐵城李氏 大邱明親會”가 발족한 것이다. 그동안 “조상의 훌륭한 유지(遺志)를 받들어 종친간의 족의(族誼)를 돈독히 하여 훌륭한 인격을 도야한다.” 는 정신 아래 굳게 뭉쳐서 역대회장과 임원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수많은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내면서 오늘에 이르러 회원수 600여명의 대 종친회로 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지구문명의 시대가 개막되고 상실된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해“인간혁명의 시대” 가 도래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따사로운 人間像”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유교문화속에 온존(溫存)되고 있는 인간성 중시의 논리와 그 바탕이 되는 가족제도, 씨족간의 족의심(族誼心)을 새롭게 하여 격변해 가고 있는 세계정세에 부응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로운 대결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우리 종친회도 이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안목으로 족의심의 돈독과 친족간의 친목이 인간성 회복의 근간이 된다는 점을 명염하면서 순조로운 세대교체도 이룩하여 나라의 발전과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종친회로 성장해 가야할 것이다.

고성이씨 대구종친회 설립취지


우리 고성이씨는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국에 있어서 정치상으로도 누대에 공헌이 있었고 문장 도덕으로도 전국에 상대가 없을만치 세세에 명성이 높은 화문거족으로서 불행히 국운이 쇠패된 한동안 혹은 독립운동 기타 악풍험조에 밀리어서 각지에 이산하였든바 천운이 순환해 민족이 해방되고 외세가 물러감에 따라 대한민국이 건설되고 반도에 신춘이 돌아오매 각처에 산재하던 우리 철성첨종은 교육과 생활관계로 인하여 남한의 중심도시인 대구에 각각 이거하는 자가 적지않다.
애족성이 우수한 우리 철성종친으로서 범 타 인류와 같이 범연히 생활할 수 없으므로 하기 종친 몇분의 발기로 고성이씨 대구명친회를 조직하고 대구에 산재한 종친을 망라하여 첫째는 조선의 유지를 받들어 자손의 번영을 꾀하고, 둘째는 시대적인 조류에 순행하고, 셋째는 길흉상조의 정신을 함양하고, 넷째는 선전계몽에 노력하여 천여(天與)의 본무를 이행하기로 목적하오니 대구에 거주하는 고이종친들은 무루입회 하심을 천만복망 하나이다.



1957년 5월 26일

고성이씨 대구명친회 발기인 光基, 守基, 鍾春, 鍾文, 祜基, 庠基, 鍾瑚, 鍾聲, 列基, 承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