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종친회 소개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1. 釜山宗親會 발자취


부산은 국내제일의 항구도시로 1950년 6.25동란을 격어면서 임시수도로 국내외 각지에서 마지막 피난처로 많이 모여 살게 된 항구도시 부산이다.
더불어 한 조상을 뫼신 우리 고성이씨 일가분도 자연히 많이 살고 있으면서 서로 찾아 만나지 못하고 남남으로 지나처 오다가 1966년8월5일 在釜 固城李氏 和睦會로 첫출발 하면서 발기인 회장을 맡은 30세 안정공파 찬(璨)종친과 뜻을 같이하신 당시 부산지방검찰청에 재직하신 영기(英基)종친을 비롯하여 一浩, 江基, 守基, 承栢 6명외 廣士, 龍文, 一峻, 龍和, 燦基 종친 등 11명이 모여 和睦會를 창립하여 회장에 璨 종친이 선임되면서 오로지 숭조목족(崇祖睦族)의 정신으로 회 운영에 전념을 다하신 결과 모여든 종친의 수가 날로 늘어남으로서 모임의 품위(위상)를 격상시키고 보다 많은 일가분을 찾기 위하여 1980년 5월5일 정기총회시 중의를 모아 회의 명칭을 固城李氏 釜山明親會로 개칭하고 和睦會 회원은 理事會 회원이 되며 재정은 이사회로 귀속시켜 집행부의 알찬 회 운영과 회원간의 애족정신을 발휘하여 1994년 12월12일 드디어 釜山明親會의 숙원 사업인 회관을 종친들의 성금으로 마련 하게되어 1995년 8월11일 釜山明親會 사무실을 부산서면으로 이전하였다.
1986년 12월경, 釜山靑年會를 창립 결성을 하였으나 수년후 釜山明親會의 후원으로 1991년 4월26일 釜山明親會 사무실(연산동 미성유리회사 內)에서 재차 釜山靑年會를 발족하여 청년회장에 29세 承榮 종친이 선임되어 이후 날로 성장 발전하여 1999년 11월27일 全國靑年聯合會를 창립(부산시청내.동백홀)하는 모태(母胎)가 되었다.
2001년 9월 辛巳譜(世譜)를 釜山明親會 사무실에서 편집 발간하여 전국에 반질(頒帙)하였으며, 또한 2004년 10월31일 당시 대종회장이신 28세 鍾默 회장의 추진으로 大宗會發展史를 편집 발간하는 등 위선(爲先)사업을 태동시키고 종중문화(宗中文化)의 결실을 맺는 등 많은 일을 해 왔으며 2005년 1월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회의 명칭도 釜山宗親會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釜山宗親會 會館記銘


우리 固城李氏는 고려 초기에 득관(得貫)한 후 일천년동안 후손의 수가 전국에 십만여명을 헤아리는 명문대족(名門大族)으로 번성하면서 빛나는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면면(綿綿)히 이어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비롯하여 공신(功臣)이나 봉군(封君, 君號 받음), 몽시(蒙諡, 시호를 받음)등의 훈봉(勳封)을 받으신 50여 위(位) 이고 청백리 한位, 서화(書畵) 및 문장가(文章家) 네位였으며 관작(官爵)을 받으신 분만도 570여 위(位)나 되었고 선조들께서 남기신 국가와 사회문화적인 공헌(貢獻)이 지대하였다.
후손들이 부산지역에 생활근거지로 삼은 것은 언제부터인가는 잘 모르지만 현재 부산에는 일천여 세대에 가까운 종친이 거주하게 되었고 비록 타향이지만 유업현양(遺業顯揚)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항상 다른 성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위선심과 애족심을 발휘하고 상부상조하며 종론(宗論) 통일로 전진하면서 물려받은 훈덕(勳德)에 새시대의 진취적 사고(思考)를 가미하여 더욱 갈고 닦아서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계승시키겠다는 원안(遠眼)과 “우리가 극명준덕(克明峻德)하여 이친구족(以親九族)한다”는 시전(詩傳)의 취의(取意)에서 종친들의 성금으로 백세공영(百歲共榮)의 터전인 이화만향(李花滿香)의 회관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여기 명판(銘板)에 새겼다.
그 거룩한 固城名家의 숭조목족(崇祖睦族) 정신이 영원히 이어 질지어다.

서기 1994년 12월12일
固城李氏 釜山宗親會 會長 李 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