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공파 소개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사암공(思菴公) 파조(派祖)이신 이 지((李墀)

생년 : 1420년 ~ 1486년
신분 : 문반
자 : 승경(升卿)
호 : 사암(思菴)

公은 世宗 2년 경자년(庚子年)에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양헌공(襄憲公) 용헌(容軒) 이원(李原)과 변한국대부인(弁韓國大夫人) 전주최씨 슬하 7번째 막내로 출생하셨다. 어려서 양부모를 잃고 한성부(漢城府) 민숙훤(閔叔萱) 공의 부인 임씨의 보살핌을 받았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증손녀(曾孫女)와 혼인하여 19세에 장자인 청파공(靑坡公) 이육(陸)을 낳으셨다. 문종시대에 음사(蔭仕)로 관직에 출범(출범)하셔서 세조때 문과급제를 하시고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 부사(府使), 승문원 참교(承文院 參校)로 오위도총부 진무 대호군을 겸임 세자익위사도 담당 하셨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參與)한 사암공(思菴公)은 세조로부터 부친인 용헌공의 공신녹권(功臣錄券)을 환급(還給)받고 재상(宰相) 반열(班列)에 오른 長子이신 시호(諡號) 문광공(文光公) 청파(靑坡) 이륙(陸)에게 철성연방집(鐵城聯芳集)을 편찬(編纂)하게 하고, 용헌조로 부터 행촌의 단군세기 원본을 물려받아 넷째아드님인 충헌공(忠憲公)괴산(槐山) 이맥(陌)에게는 행촌공의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복원(復元)케 하셨다.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한테 용헌신도비(容軒神道碑)를 찬(撰)하게 하셨고 장자 이륙(陸)의 높은벼슬로 인해 증 예조참판이 되셨다. 4남을 두셨는데 륙(陸), 수(陲), 습 (隰), 맥(陌)이시고 사암공의 장자이신 청파공 이륙(陸)은 고성이씨 선계(先系) 팔촌도법(八寸圖法)원고(原稿)를 물려받아 1476년 철성연방집에 족보의 근간을 이루는 8촌 세계도를 만드셔서 현재의 고성이씨 명문거족의 문서화 된 족보의 기초가 됐다. 증손으로는 7도 관찰사와 참판을 지내신 우당공(雨堂公) 이 택(澤), 도승지·한성부판윤,평안도관찰사 및 동지사(冬至使) 겸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겸임하신 자는 광윤(光潤), 시호(諡號) 안광공(安匡公) 이 명규(命珪), 그리고 지평, 정언, 병조정랑, 홍문관교리, 대사간, 개성부유수, 강원도관찰사를 지내신 자는 자정(子淨), 호 수곡(守谷), 시호 정혜(靖惠), 봉조하공 이 찬(澯)선조님들이 사암공 후손들로 시조(始祖)로부터 15세손들이시고 후세에 상당히 걸출한 인물로 벼슬이 종1품까지 지내셨으나 시대를 잘못만난 백규 이 괄(适) 장군도 사암공 이시며, 시조로부터 17세손이시다. 우리나라 상고사의 근본을 알게 하는 환단고기 5편중 단군세기를 쓰신 행촌공에 이어 일십당 맥은 태백일사를 쓰셔서 가일층 고성이씨 인물이 대한민국 상고사의 기반을 공고히 하셨다.

끝으로 사암공파 및 청파공파 종중총회는 매년 12월중에 개최하고 있으며, 사암공의 후손들이 서울를 비롯 경기 화성, 수원, 고성, 창원, 부산, 진주, 연기, 태안 등지에 살고 있으며 숭조목족을 위한 종중 총회는 매 3년 주기로 수원에서 2회 대전 문희공 회관에서 1회를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