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재공파 소개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둔재공파 종회에 들르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홈페이지 개설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계시는 종무 대종회장님 과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경의와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놀랄만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여도 우리 선조들의 뿌리를 알고자할 때에는 족보나 문헌들을 들추어 보아야 하였으나 이제는 대종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기만하면 우리 조상님들의 훌륭하신 업적은 물론이요 우리종원 들의 동향까지도 세세히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변화라 하겠으며 장한일이 라 하겠습니까?


우리 고성이씨 시조(始祖)이신 휘(諱) 황(璜)께서는 고려9대 덕종(德宗)때 생원 문과 보통고시에 급제하여 은불사(隱不仕)를 하시다가 1033년 거란병(契丹兵)이 침입해 왔을때 좌우맹교위(左右猛校尉 경호장교)로 전공을 세워 밀직부사(密直 副使 왕명의출납)가 되시고 문종(文宗)때인 계묘(癸卯) 1063년에 호부상서(戶部 尙書)에 올라 철령군(鐵嶺君)의 봉호를 받으시고 고성(固城)고을에 후손들의 영원 한 근본을 여시는데 기여하시었다.

이어서 우리 둔재공파(鈍齋公派)의 뿌리와 연혁을 말씀드리고자 하면 둔재공께서는 시조 11대손이신 용헌공(容軒公) 휘(諱) 원(原)할아버지의 7형제중 장남으로 서 휘(諱) 대(臺)요 공(公)의자(字)는 자익(子益)이요 호(號)는 둔재(鈍齋)이시다.
영락(永樂 광개토대왕연호) 갑오년(甲午年)에 배공신(拜功臣)으로 도감록사(都監錄事)를 하셨고 을미(乙未)년에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병신(丙申)년에 군자감판관 (軍資監判官) 정유(丁酉)년에 공조정랑(工曹正郞)과 세자우익찬(世子右翼贊)으로 연연이 승급하셨으며 계묘(癸卯)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를 하셨다. 또한 승공조(陞工曹)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계축(癸丑)년에 상주목사(尙州牧使)를 하셨고 신유(辛酉)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중추원부 사(中樞院副使)를 역임하시고 계해년(癸亥 세종25년) 8월4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둔재공 할아버지께서는 4형제를 두시었는데 첫째분이 호는 계림군(桂林君)이요 휘 (諱) 월(越)자이시다. 공께서는 청렴한 지조와 온화한 성품으로 안동,수원,남원부사 를 역임하셨고 그 고을에는 모두 공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가 있었다. 그 후손 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은 김천과 전주로 약800명에 이른다.

두번째분은 호는 부정(副正)이요 휘(諱) 신(晨)이시고 공의 자는 희보(熙甫)이시 며 벼슬은 부정(副正)에 오르셨다 그 후손으로는 여주지역에 60여명이 살고있다.
세번째분은 병조참판공(兵曹參判公)으로 휘(諱) 의(嶷)요 자는 사첨(士瞻)이시다. 공께서는 19세에 생원(生員)이 되시고 20세에 호방(虎榜)에 올라 병조참판(兵曹參 判)을 역임하시었다 그 후손들은 성주,광주,함평 등지에 200여명이 살고있는 것 으로 파악되고 있다.
네 번째분은 휘(諱) 경(庚)으로 공께서는 평산부사(平山府使)를 지내셨으나 그후 기록이 유실되어 상세한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 그 후손들은 용인, 진천지방을 중심으로 4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 되고 있다.
우리 둔재공파의 총회는 매년 음력 10월에 열리고 있으며 성주,김천,전주,함평, 서울을 순회하며 개최하고 있다.
둔재공파는 1974년 10월 서울 광화문 영남여관에서 20여명이 모여 종회를 발족하였으며 초대회장으로 종만 종친을 추대하였다 그 후 1989년 10월 부산의 영화 종친을 2대회장으로 추대하였고 2003년 8월10일 대구 서울옥에서 3대회장으로 종만 회장이 재 추대 되었고 임기는 2016년 10월까지이다.
위와 같이 둔재공파의 뿌리와 연혁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아울러 우리 대종회의 무궁한 발전과 종원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8월


둔재공파종회장 이 종 만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