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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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문희공(文僖公, 휘 尊庇)께서 남긴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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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1:51 조회2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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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국사께서 고려 충렬왕 3년 여덟살 때에 백암산 정토사(현 백양사) 중창주인 중연선사(中延禪師)의 문도(門徒)인 일린화상(一麟和尙)에게 나아가 포양(哺養)의 은(恩)을 받다가 충렬왕 5년 열 살 때 조계산 원오국사(圓悟國師)의 슬하로 옮기어 체발수구(剃髮受具) 하시니, 그때에 문희공께서 원오국사에게 보낸 칠언시(七言詩) 한 수가 있다(東文選 卷之14).

조계의 회당 화상에게(寄 曹溪晦堂和尙)

        물무미악종귀용(物無美惡終歸用) 좋건 궂건 물건은 다 쓸데가 있는 법
        고리수염착자다(苦李誰嬚看子多) 쓴 오맛 열매 많음을 누가 탓하리.¹⁾
        장식구조천자소(長息久朝天子所) 맏이는 오래전 천자의 처소에 가 있고
        차아신부법왕가(次兒新付法王家) 둘째는 새로 부처님 집에 부쳤구나.
        이충고시위신분(移忠固是爲臣分) 충성을 옮김은 워낙 신하의 분수라
        할애기여출세하(割愛其如出世何) 사랑을 나누어서 출가함은 어쩌리
        환소노옹유체념(還笑老翁猶滯念) 웃으워라 늙은이가 오히려 마음에 걸려
        유시혼몽묘천애(有時魂夢杳天涯) 이따금 몽혼(夢魂)이 아득하게 하늘가에 헤매누나

주해) *1. 비유 : 진나라 왕웅이 여러 사람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오얏나무 열매가 많이 달린 것을 보고 사람들은 땃으나 왕웅은 손을 대지 아니하며 “길가의 오얏나무에 많은 열매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반드시 먹을 수 없는 쓴 오얏일 것이다” 하더니 과연 쓴 열매이었다. 작가의 성이 李氏이므로 이 말을 인용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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