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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밀양청년회 안동 유적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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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0-04 22:20 조회31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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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이면 광복을 되새겨 본다.

8.15 광복의 의미 보다는 황금연휴 피서인파에 도로가 몸살 날 정도이고 교통대란이 꼴 불견이더라.

고성이씨밀양청년회는 이를 피해 21일 정신문화의 고장 안동 중심에 고성이씨 명문가의 애국혼이 서린 임청각(臨淸閣)을 다녀왔다.

상해 임정 초대국무령이셨던 석주 이상용 선생 종택인 임청각은 안동지역에서 머슴 400여 식솔을 거느렸던 만석군 대가였다.

종손인 선생께서는 암울했던 일제시대 나라를 되찾는 일은 선비의 책무(士農工商의 첫 서열이 사(士)라는 의미는 책임을 지는게 지도자)라는 애국심에

가산을 정리하고, 서간도로 이주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육성과 사분오열 갈라진 독립운동을 집중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시다 해방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해방 후 애국훈장 추서와 함께 유해를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치 모셔졌다.

독립투사 김좌진 장군등 혁혁한 공을 새운 분들을 양성하고, 독립운동을 도모했던 큰 스승이요 참 지도자였다.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이한 김구, 이승만 등 애국지사가 정부수립을 하면서 그 결실을 품어 광복의 뒤안길에 묻혀 버린 것이 못내 아쉽고 애석하다.

엄연히 상해 임정이 군자금 조성 등 독립을 위한 정부체제를 유지했던 터라 해방을 기점으로 건국 운운하는 지도자와 우리의 역사 인식에 한심한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위정자들이란 승자의 지위에서 달콤한 열매만 취하고 그걸 지키기 위한 오류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식인들의 양심과 후손들이 바로잡아 나가는 각고의 노력을 게을러서는 아니될터 후손들의 문중사 참여도는 날이 갈 수록 무관심으로 쇠퇴하니 선생께서 나라를 잃고 설움을 삼키던 통한과 다를 바 있으랴 

애석한 일이다. 독립애국지사 9분을 키운 임청각은 종손이 "왜놈의 지배하에 하루를 더 사는게 치욕을 더 할뿐이다." 라는 혈서를 남기고 자결하므로써 후손이 끊어진 지금 문화재청의 보물 지정과 안동문화지킴이 단체 등에서 학술회를 개최하고 일본이 안동의 정신을 꺽기 위해 99칸이었던 임청각 건물 30여칸을 헐고 철도 부설을 했던 치욕의 역사를 복원 할 계획이라는 해설사 안내에 눈 시울이 뜨거워진다.

또한 많은 지식인들이 석주 선생의 임정 정통성과 가문의 혼을 지키려는 홍보대사로서 역할을 해 주고 있음에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물질이야 인위적으로 수단을 동원하면 생성할 수 있지만, 문화는 오랜 역사와 지덕, 실천적 철학 없이는 누릴 수 없는 인문의 최고 성지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흥망앞에 개인의 영화를 송두리채 버리고 구국의 일념으로 생을 마감한 석주 선생의 정신과 혼을 가슴 깊이 새기고 새긴다.

선조의 덕망과 자존의 피가 흐르는지 답사길 여정내 폭염의 기세는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올라 여행하기엔 고달픈 일정이었지만 문중유적 답사를 마치고, 병산서원.하회탈공연을 끝으로 여행길을 접는다.

임청각 혼이 묻어 있는 무궁화 분목 한그루를 가져와 정원 뜰에  심었다.

언제나 다시 가고픈 안동이다.

가문의 영욕이 숨 쉬고 있는 전통문화의 고장 안동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 가운데  임청각.귀래정. 원이엄마 시비.명호서원.반구정 등 고성이씨 유적지가 중심에 있고,

가문의 정신이 계승 발전되고 있으니 문중의 자랑이 아닌가

사는게 힘들다 하여 내 몰라 말고 참여하는 관심과 역사 인식에는 한목소리를 내는 정의와 신념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201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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